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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민주책방

지금 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걸까?

[소설 도서리뷰]
# 아몬드
주관적 평가 - (5/5) ★★★★


최근 몇 주 간, 감정에 큰 파동이 일었다.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 시기에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없이 잔잔함만 있었던 반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동안 기쁨, 설렘, 혼란, 기대, 실망, 슬픔, 즐거움, 감사함, ···. 정말 다양한 감정의 파도가 일었다.

이 시가 떠올랐다.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필경 : 끝장에 가서는, 결국, 마침내

*환대 :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 환영, 후대, 대접.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우주가 온다는 것' 이라는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
상대방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는 다른 삶의 모습에 신선하고 기분좋은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향성을 고려하며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편이라 생각해왔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다양한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그 환경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정적으로 살고 있었다. 겸손해질 수 있었던 기회였고, 이러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음에 참 감사하다. 그리고 이 엄청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몬드> 주인공 신윤재.
선천적으로 편도체에 문제가 있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점차 사랑의 감정,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알아가게 된다.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지만 열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윤재의 이야기를 읽으며, 최근 감정의 파도가 일기 이전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큰 기쁨이나 큰 슬픔도 없는, 그렇다고 무언가 큰 이벤트를 만들고 싶지도 않던, 조금은 무기력한 나의 모습 말이다. '얼마나 더 아둥바둥 살아야할까', '이렇게 살아간다고 해서 미래에 어떤 행복과 안정감을 누릴 수나 있을까' 하는 약간은 자조적인 생각과 끝없는 노력에 지쳤던 것 같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들 하지만, '이 방향이 최선일까' 혼자만의 고민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세상은 나의 생각보다 훨씬 넓음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에 만났던 많은 사람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단순히 만남 자체 덕분이라기 보다는, 만남을 통한 감정의 변화를 통해 마음 깊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해 그저 덤덤하기만 했던 윤재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듯이, 나의 마음에도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감정을 느낄 수 있음에 다시금 감사했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 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아 무관심 속에 사망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고는 한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이었다. 감정을 느끼지만, 감정을 느끼는 것만 못한 사람들이 많다.
음. 어떻게 보면, 내가 피해를 입을까봐 두렵다는 감정이 더 크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남의 일이기 때문에,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불쌍함/동정이라는 감정보다 무서움/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일 수도 있겠구나.


몇 년 전,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쿵!' 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돌아보니 나보다 조금 어린 듯한 여성분이 쓰러져 있었다. 우왕좌왕 열차 안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다들 놀란 나머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때, 나를 포함한 어떤 아저씨, 아주머니, 3~4명이 가까이 다가가 여성분의 상태를 살피며 의식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의식이 있는 상태였다. 열차 안에 있으면 끝없이 이동할 것이란 생각에, 몇몇 분들과 함께 여성분을 부축하여 열차에서 내렸다.
충격 때문일까,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듯 보였지만 말을 걸며 계속 상태를 확인했고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역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119 신고 직전이었다. 119 신고를 하는 것이 어떨지 여성분에게 물어보았지만, 극구 사양했기에, 더운 여름 수분이 부족한 탓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판기 음료수를 뽑아 수분 보충을 해주었다. 보호자 연락처를 물어보았고, 여성분은 정신이 없어 한동안 이야기를 하지 못하다가 보호자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보호자와 연락이 되어 근처 역 출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계속해서 여성분의 상태를 살피며 말을 걸었다. 다행히도 내가 여자였기에, 가장 가까이에서 상태를 살펴줄 수 있었다. 남성분들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역 출구에서 여성분의 보호자와 만날 수 있었고 거듭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며칠 후, 베스킨라벤스 기프티콘과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감사 인사를 받기 위해 도와드린 것은 아니었는데. 다른 분들과 함께 도움을 주었던 경험, 이에 감사함을 표하는 따뜻함.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는 훈훈함을 느꼈다.
'쿵!' 하는 그 순간,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내 일 같았다. 더운 여름, 그리고 기립성 저혈압으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 또한 겪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순간의 감정이입으로, 남 일 / 내 일 구분 따위는 없었다. 함께 도움을 주었던 남성분과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아내가 동일한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겪어봤던 일이기 때문에, 남 일 같지 않았기 때문에 선뜻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겪어보지 않았던 일이라면? 선뜻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좀 식상한 결론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크고 거창한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느끼는 순간순간들이 모여,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 되는 것 같다. '사랑해' 라고 말하는 것은, 순간순간 느꼈던 작은 설렘/기쁨/기대/감동/흥분의 누적이 만들어낸 표현이 아닐까.
사랑스럽고 가슴 벅찬 순간들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감정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어떠한 결심도, 어떠한 생각도, 어떠한 시작과 끝도 말이다.

'지금 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걸까?'
나의 감정에 솔직해짐으로써, 더욱 성숙해져감을 느낀다. 상대방의 감정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감정에도 집중해보며 보다 솔직해질 수 있어야겠다.
그동안 스스로의 생각/머리에만 집중해왔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정/마음인 것 같다.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어떻게 느끼는지, 삶에 있어 감정의 소중함을 항상 잊지 않아야겠다.

모든 진심은 감정에서, 마음에서 시작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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